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재인/다른 정치인들과의 관계 (문단 편집) === [[조경태]] === || [[파일:10005151.jpg|width=100%]] || || 두 사람의 관계를 요약하는 사진[* 조경태 옆사람은 [[금태섭]]으로 추정. 공교롭게 이 사람도 [[문재인 정부]]와 사이가 안 좋아져 결국 탈당했다.] || ---- 한때는 친노라는 같은 공통점으로 엮여 있었고, 친노무현으로서 서로 동거동락 했으나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이후로는 그야말로 '''[[철천지원수]].''' 다만 둘 다 친노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참여정부 당시 조경태는 유일한 민주당계 정당 부산광역시 3선 국회의원으로서 원조 친노로 자리잡았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좌하는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통점은 여기까지... 정치적으로 사이가 좋다고 말할 수 없다. 우선 문재인 전 대통령과 함께 유이한 부산광역시 지역 민주당 당선인이다. 특히 조경태는 이때 3선 부산광역시 야당 국회의원으로 입지가 상당했는데 지역구 관리가 기가막혔던 덕에 --지하철 사진 한장으로-- 보수 정당 후보를 모두 누르고 당선되었던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사상구에서 당의 많은 푸쉬를 받았던 덕에 당선되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조경태 의원은 컷오프되었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은 최종 후보로 정해졌다. 뭐... 여기까지는 그저 그런 경쟁 같을 수 있지만 본격적인 갈등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창당되고 난 뒤부터 벌어졌다. 조경태 의원은 부산광역시 3선을 자임하면서 최고위원으로 당선되었지만 최고위원으로서 치른 제6회 동시지방선거와 2014년 재보궐선거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면서 사퇴하게 되는데, 그 다음 대표가 바로 문재인 전 대통령이었다. 두 사람이 다투게 된 또 하나의 원인은 바로 [[친노]]의 정통성 문제도 있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노무현]] [[전직 대통령|전 대통령]]의 후계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정치 성향과 관계 없이 백이면 백 문재인을 꼽겠지만 조경태 본인의 생각은 달랐다. 적어도 조경태 자신은 진정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계자를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일단 조경태 본인이 나이는 문재인 전 대통령보다 한참 어리지만 정치에는 훨씬 더 먼저 입문한 선배였다. 또 본인은 지역주의 타파라는 노무현 정신에 입각해 당시 민주당계 정당에 있어선 험지였던 부산광역시에서 지역구 주민들과 살을 맞대며 도전한 끝에 3선 고지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전 대통령은 조경태 본인이 봤을 때는 '''노무현의 영원한 친구'''라는 것 외에는 별로 내세울 게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그 이미지 하나로 정치에 입문한 그 순간부터 대권 잠룡의 자리에 오르고 전국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으니 당연히 불쾌할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조경태 자신은 진짜 노무현 정신에 따라서 험지인 부산광역시에서 구르며 자신의 노력만으로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문재인은 그저 대중적인 이미지 하나로 순식간에 대권 후보까지 올랐으니 도대체 어딜 봐서 문재인이 노무현의 계승자란 말이냐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누가 진짜 노무현의 후계자인지를 놓고도 사이가 틀어졌다. 조경태 본인 말로는 문재인이란 사람 자체가 싫은 건 아니라고는 하지만 분명한 건 적어도 그는 문재인을 노무현의 후계자라고는 보지 않았다. 이 뿐만 아니라 자잘하게 [[새정치민주연합]]과 마찰이 있었고, (세월호 투쟁, 박근혜 대통령 국회 연설 당시 태도)[* 이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은 다 앉아있는데 유일하게 서서 대통령에게 예의를 다했다. 이게... 문제인지 잘 모를수 있지만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새정치민주연합 당원들의 감정을 생각하면...] 결국 [[더불어민주당]]으로 이름이 바뀐지 얼마 되지 않은 2016년 1월, [[새누리당]]으로 복당했다.[* 원래 조경태는 [[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 소속이었으나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통합민주당과 [[신한국당]]이 합당했기 때문에 [[한나라당]] 당적을 잠시 가진 적이 있었다. 이후 [[2000년]]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해 민주당계 정당에서 활동해오다가 무려 16년 만에 복당한 셈.] 조경태가 새누리당으로 입당하자마자 흔한 보수 정당 국회의원 1명이 되어버렸다. 차라리 부산광역시 4선 민주당계 의원이었다면 몰랐을까, 보수 정당 출신 부산광역시 다선 의원은 희소성이 떨어진 탓에 자기 자산을 까먹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특히 부산광역시에서만 5명(재보궐선거 후 6명)까지 더불어민주당이 가져가는 기염을 토했고,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해버리면서 탈당한 조경태의 입지가 무색해졌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을 했지만 돈만 날려먹은건 덤. 이때를 기점으로 그의 반문재인 성향은 더욱 강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경태는 자유한국당에서 더불어민주당 경력을 조금씩 지워가면서 보수 유튜브 방송에도 나가고 반문재인 프레임을 통해 완전히 보수 정치인으로 자리잡았고 최고위원까지 당선되었다. 특히 국회 기재위원장을 맡은것이 친박쪽 지지를 얻어서 된 탓에 더 이상 과거의 친노 조경태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다만 조경태 본인은 문재인과의 악연, 보수로 전향한 것과 별개로 여전히 노무현을 존경한다는 의사를 몇 번 보인적 있으며, 보수 정당으로 당적을 옮긴 후에도 매년 노무현 추도식에 보수 정당 소속 의원으로 거의 유일하다시피 참석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